1.지주회사 간판 아래에서 KEC가 움직인다
한국전자홀딩스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려면 2006년을 먼저 짚어야 한다. 그해 제조사업을 인적분할한 뒤 한국전자홀딩스는 직접 반도체를 생산하는 회사가 아니라 자회사와 해외 현지법인을 지배하고 경영을 지도·육성하는 지주회사로 남았다. 공장과 제품, 고객의 회로에 들어가는 부품 이야기는 대부분 핵심 자회사 KEC에서 시작한다. 상장사 이름과 제품에 찍힌 이름이 다른 이유다.
한국전자홀딩스가 보유한 KEC 지분은 29.59%다. 과반에는 못 미치지만 연결재무제표는 다른 주주들의 지분이 넓게 분산돼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한국전자홀딩스가 사실상 지배력을 갖는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연결 손익을 읽을 때는 ‘지주회사가 받는 배당이나 수수료’만 떠올리면 구조를 놓친다. KEC와 연결 대상 회사들의 반도체 제조·판매 활동이 한국전자홀딩스 숫자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이 구조에는 두 개의 시선이 겹친다. 법적으로는 자회사를 관리하는 지주회사이고, 경제적으로는 전력반도체 사업의 성패가 연결 실적을 좌우하는 기업집단이다. 2025년 외부매출에서 서비스가 차지한 몫은 제한적이었고 대부분은 반도체 제품에서 나왔다. 주주가 봐야 할 것은 지주회사 본사의 독립적인 이야기가 얼마나 화려한지가 아니라, KEC가 만든 부품이 고객 설계에 들어가 얼마나 반복적으로 출하되는지다.
지주회사 체제는 공시 숫자를 읽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계열사끼리 제품이나 서비스를 주고받으면 각 부문의 매출에는 잡힐 수 있지만 연결 매출에서는 제거된다. 그래서 ‘반도체 부문 매출’과 주주가 보는 ‘연결 외부매출’은 같은 숫자가 아니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사업 규모를 부풀려 읽거나, 반대로 내부 거래가 많은 구조를 이상 징후로 오해하기 쉽다.
2.검은 패키지 하나가 전원과 보호 회로에 들어가기까지
KEC의 핵심 제품군은 트랜지스터(TR), 다이오드, 집적회로(IC), MOSFET, IGBT 같은 비메모리 전력반도체다. 이름은 서로 다르지만 고객 장치 안에서 전력을 제어하고, 전류를 증폭하고, 한 방향으로 정류하고, 회로를 보호하거나 구동하는 역할로 묶인다. 메모리처럼 정보를 저장하는 칩이 아니라 전기가 필요한 곳으로 알맞게 흐르도록 다루는 부품에 가깝다.
MOSFET은 전기 신호로 전류의 흐름을 켜고 끄는 스위치다. KEC가 제시한 저전압 MOSFET은 배터리 기반 전원 변환과 부하 스위칭 같은 장면에 놓인다. 완성품 사용자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전원을 안정적으로 나누고 필요한 회로를 작동시키는 설계 안에서는 구체적인 부품 번호와 패키지 형태로 선택된다.
이미지: KEC 로고가 찍힌 검은색 저전압 MOSFET 패키지▲ KEC 로고와 단자가 보이는 KUS086N10DA 저전압 MOSFET 패키지로, 전력 스위치가 고객 장치에 들어가는 물리적 형태를 보여준다 — 출처: KEC Corporation, 현재 제품 페이지·2026-08-13 열람
다이오드와 정류기는 전류의 방향을 다루고 전원 회로를 보호하는 쪽에 놓인다. KEC의 제품 분류에는 여러 다이오드·정류기 계열이 있으며, 사진 속 SMC 패키지 제품도 인쇄회로기판과 전원장치에 실장되는 작은 부품의 모습을 보여준다. 검은 몸체와 금속 단자만으로는 최종 용도를 알아보기 어렵다. 바로 그 점이 이 사업의 성격이다. 회사 브랜드가 소비자 앞에 크게 드러나는 대신 고객의 보드 안에서 기능을 수행한다.
KEC가 제시하는 적용 범위는 자동차 전장, 가전, 모바일 충전, 산업자동화와 모터, 배터리관리시스템(BMS), 태양광 인버터, 무정전전원장치(UPS), 서버 전원까지 넓다. 적용처가 많다는 사실은 곧바로 모든 시장에서 매출이 발생한다는 뜻은 아니다. 제품 카탈로그가 보여주는 것은 부품이 풀 수 있는 회로 문제의 범위이며, 실제 매출은 고객이 특정 부품을 설계에 채택하고 주문할 때 생긴다.
이미지: KEC 로고가 보이는 사각형 정류 다이오드 패키지▲ 금속 단자가 달린 ES5B Super Fast Recovery Rectifier 패키지로, 다이오드가 PCB와 전원장치에 실장되는 부품임을 보여준다 — 출처: KEC Corporation, 현재 제품 페이지·2026-08-13 열람
제품의 외관이 비슷하다고 경제성이 같은 것도 아니다.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 MOSFET과 IGBT는 맡는 기능과 고객 회로가 다르고, 같은 계열 안에서도 패키지와 사양이 갈린다. 주주 입장에서 중요한 질문은 제품 이름의 개수가 아니라 어떤 제품이 실제 고객 승인을 거쳐 얼마나 자주 출하되는가다. 회사가 폭넓은 적용 사례를 제시하는 이유도 결국 부품 단품을 자랑하려는 데 있지 않다. 고객 장치 안에서 그 부품이 맡을 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3.매출은 카탈로그가 아니라 고객의 회로에서 생긴다
전력반도체의 판매는 최종 소비자가 매장에서 KEC 브랜드를 골라 사는 방식과 다르다. 고객은 전원·구동·보호 회로를 설계하면서 필요한 전기적 역할과 패키지를 정하고, 적합한 부품을 채택한 뒤 공급을 받는다. KEC에는 제품을 만드는 역량뿐 아니라 패키지 정보와 적용 분야를 고객이 확인할 수 있게 제시하는 일이 필요하다. 제품이 설계에 들어간 뒤 출하가 이어져야 비로소 연결 외부매출이 된다.
이 흐름을 따라가면 회사 발표를 읽는 기준도 선명해진다. ‘적용 가능’은 카탈로그 단계이고, ‘공동개발’이나 ‘시제품 확보’는 기술·개발 단계다. 고객 승인이나 양산은 그보다 매출에 가까운 단계이며, 실제 공급량과 단가가 손익을 만든다. 각 단계는 의미가 있지만 서로 바꿔 읽을 수 없다. 특히 오래전 개발 발표를 현재 수주잔고처럼 취급하거나, 시제품을 양산 매출로 당겨 계산하면 현실과 기대의 경계가 무너진다.
제조의 앞단에는 웨이퍼, 리드프레임, 화학물질, 금속과 와이어가 있다. 웨이퍼 위에 소자를 만들고, 리드프레임과 와이어 등으로 외부 회로와 연결 가능한 패키지 형태를 갖추는 데 필요한 조달품목들이다. 2026년 1분기 공시에서 회사는 주요 매입처에 독과점이 없다고 기재했다. 이는 특정 공급처 하나가 시장을 독점한다고 회사가 파악하지 않았다는 의미이지, 원재료 가격과 조달 조건이 손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보장은 아니다.
생산 거점은 구미와 중국 우시, 태국 람푼에 걸쳐 있고 국내와 아시아·미국 등에는 판매법인, 사무소, 대리점망이 있다고 회사는 소개한다. 한 지역에서만 만들고 한 시장에서만 파는 구조는 아니다. 제조 거점은 물량과 공정을 담당하고, 판매망은 고객의 설계와 주문이 있는 시장에 닿는 통로가 된다.
고객 기반은 넓은 적용처와 별개로 집중도가 존재한다. 2025년에는 연결 외부매출의 10% 이상을 각각 차지한 고객이 있었지만 공시는 이름을 A사와 B사로 가렸다. 고객 이름이나 어느 제품군의 구매자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특정 자동차 회사나 전자회사와 연결해 추정할 근거는 없지만, 큰 고객의 주문 변화가 전체 매출에 무시하기 어려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구조적 사실은 남는다.
이 사업의 돈길은 짧아 보이면서도 여러 관문을 지난다. 조달한 소재가 제조와 패키징을 거쳐 판매 가능한 부품이 되고, 고객 회로의 요구에 맞아야 하며, 채택 뒤 주문이 이어져야 한다. 넓은 응용 분야는 기회 공간을 넓히지만 매출의 자동 분산을 뜻하지 않는다. 반대로 익명의 대형 고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어느 최종 제품에 종속됐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공시가 알려주는 범위 안에서는 ‘다양한 사용처를 겨냥하되 일부 고객의 비중은 크다’가 가장 정확한 그림이다.
4.가동률은 뛰었지만 손익은 더 무거워진 2025~1Q26 실적
2025년 연결 매출은 전년보다 줄었고 영업손실과 순손실은 이어졌다. 영업현금흐름은 플러스였지만 회계상 손실을 뒤집지는 못했다. 이어진 2026년 1분기에는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늘었으나 영업손실 폭도 커졌다. 외형의 작은 회복과 수익성 악화가 같은 분기에 나타난 셈이다.
연결 기준 | 2024년 | 2025년 | 1Q25 | 1Q26 |
|---|---|---|---|---|
매출 | 2,943.0억원 | 2,758.9억원 | 753.0억원 | 776.9억원 |
영업손실 | 41.3억원 | 140.5억원 | 3.1억원 | 28.6억원 |
당기순손실 | — | 197.8억원 | — | 29.1억원 |
반도체 공장 평균 가동률 | — | 80.6% | — | 94.2% |
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가동률과 손익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1분기 평균 가동률은 직전 연간 평균보다 높았지만 영업손실은 전년 동기보다 확대됐다. 가동률은 설비가 얼마나 돌아갔는지를 보여주는 운영지표이지, 판매가격과 제품 구성, 원가 및 고정비를 모두 반영한 이익률이 아니다. 생산량이 늘어도 채산성이 낮거나 비용 부담이 크면 이익은 따라오지 않을 수 있다. 공시 숫자만으로 어느 요인이 얼마만큼 손실을 키웠는지는 분해할 수 없다.
매출 구성은 반도체 중심성이 더 뚜렷해졌다. 2025년 외부매출은 반도체 제품 94.29%, 서비스 5.71%였고, 2026년 1분기에는 각각 97.47%와 2.53%였다. 1분기 금액으로는 반도체 제품 757.2억원, 서비스 19.6억원이다. 서비스가 완충재 역할을 하기보다는 반도체 제품의 판매 성과가 연결 외형을 거의 결정하는 구조로 읽힌다.
여기서 보고부문 숫자와 외부매출을 반드시 나눠 봐야 한다. 2025년 보고부문 매출은 반도체 4,423.7억원과 서비스 157.6억원이었지만 부문간 거래 1,822.5억원을 제거하면 연결 외부매출은 2,758.9억원이 된다. 2026년 1분기에도 보고부문 반도체 매출 1,212.2억원 가운데 455.0억원이 부문간 거래 제거와 연결된다. 전자를 시장에서 고객에게 판 매출로 그대로 인용하면 연결 사업 규모를 과대하게 표시한다.
현금흐름과 재무상태는 손익계산서와 다른 각도를 준다. 2025년 연결 영업현금흐름은 160.3억원으로 플러스였다. 2026년 3월 말 연결 현금및현금성자산은 257.3억원, 부채비율은 38.05%였다. 적자가 곧바로 현금 유출과 같은 크기로 움직인 것은 아니지만, 이 숫자만으로 ‘현금부자’나 ‘저평가’라는 평판을 붙일 근거도 없다. 손실이 지속되는 동안 현금 창출이 반복되는지, 투자와 자금조달 뒤 잔액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2026년 8월 12일을 기준으로 직접 확인된 최신 정기 실적 원문은 1분기 보고서다. 2분기 잠정실적이나 반기보고서 원문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그 이후 매출, 손익, 가동률, 현금흐름은 여기서 이어 추정하지 않는다. 현재까지 읽히는 결론은 간명하다. 생산설비의 움직임은 활발해졌지만, 그 물량이 이익으로 바뀌는 가격·제품 구성·비용 구조는 아직 숫자로 증명되지 않았다.
5.자동차 전장 이력과 새 제품은 서로 다른 시간표에 있다
자동차 전장은 KEC의 응용 분야 가운데 서사가 가장 구체적으로 남아 있는 축이다. 자동차 안에는 전원 공급과 구동, 보호가 필요한 회로가 많고 회사는 이를 공식 적용 분야로 제시한다. 다만 ‘자동차용으로 쓸 수 있는 제품’, ‘고객과 개발한 제품’, ‘승인을 얻은 부품’, ‘현재 매출을 내는 양산품’은 같은 표현이 아니다. 공개된 사건을 시간 순서로 놓으면 기술 이력과 현재 실적 사이의 간격을 볼 수 있다.
시점 | 공개된 사건 | 확인 가능한 단계 |
|---|---|---|
2017년 | LG화학과 전기차 BMS용 600V 다이오드 모듈 공동개발 발표 | 과거 공동개발 이력 |
2020년 | 테슬라 디지털 콕핏 탑재 반도체 부품 승인 획득 발표 | 당시 승인 발표 |
2024년 | 구미 전력반도체 제조설비 투자 협약 | 투자·고용 계획 발표 |
2026년 | 회사 연혁에 600V급 IPM 시제품 확보 기재 | 시제품 단계 |
2017년 발표는 전기차 배터리관리시스템에 쓰이는 다이오드 모듈을 LG화학과 공동개발했다는 내용이다. BMS는 배터리 상태와 전력 흐름을 관리하는 시스템이고, 여기서 다이오드 모듈은 전류의 방향과 보호에 관계된 부품으로 제시됐다. 이 기록은 KEC가 전기차 회로를 겨냥한 개발을 일찍 시도했다는 증거다. 그러나 2026년 현재의 공급량, 수주 또는 매출을 입증하는 자료는 아니다.
2020년에는 디지털 콕핏에 들어가는 반도체 부품 승인을 얻었다는 회사 발표가 나왔다. 디지털 콕핏은 차량 안의 디스플레이와 조작 화면이 모이는 영역이다. 공개 이미지에는 KEC 로고가 찍힌 소형 표면실장 부품들이 보인다. 사진이 입증하는 것은 당시 소개된 부품의 형태와 발표 맥락까지이며, 이후 공급이 계속됐는지나 매출 규모가 얼마인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이미지: 흰 배경 위에 놓인 KEC 로고의 소형 표면실장 부품 세 점▲ 흰 배경에 배열된 KEC 로고의 소형 SMD 부품으로, 2020년 디지털 콕핏 관련 승인 발표 당시 소개된 부품의 크기와 패키지 형태를 보여준다 — 출처: 엠투데이/AutoDaily, 2020-08-31
최근 제품 이력에는 600V급 IPM 시제품 확보가 올라 있다. IPM은 전력 스위치와 구동·보호 기능을 한 패키지에 묶는 지능형 전력모듈을 뜻한다. 시제품을 확보했다는 것은 개발 단계가 진전됐다는 표시지만 양산, 고객 인증, 매출 인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처럼 자동차와 전력모듈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다’와 ‘이미 큰돈을 번다’ 사이에 있다. 과거 공동개발과 승인, 현재 시제품이라는 서로 다른 단계가 존재하며, 연결 실적에 반영되는 순간은 고객 주문과 양산 출하가 확인될 때다.
이 시간표가 투자자에게 주는 효용은 기대를 지우는 데 있지 않다. 기대의 주소를 정확히 적는 데 있다. BMS 공동개발은 축적된 이력이고, 디지털 콕핏 부품 승인은 당시 고객 접점을 보여주며, IPM은 새 제품 후보를 나타낸다. 셋을 한 덩어리의 현재 매출로 더하지 않으면 오히려 앞으로 어느 단계의 진전이 중요한지 더 잘 보인다.
6.구미의 증설 약속과 제조 현장의 무게
KEC는 2024년 구미시·경상북도와 전력반도체 제조설비 투자 업무협약을 맺었다. 발표된 계획은 향후 1년 동안 648억원을 투자하고 신규 고용을 추진한다는 내용이었다. 지역 생산기반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하지만, 협약 발표만으로 실제 집행액과 설비 완공, 가동률, 매출 기여까지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계획이 생산능력과 제품 출하로 바뀌었는지는 후속 공시와 운영 결과가 맡을 부분이다.
설비 투자는 성장 서사인 동시에 고정비와 실행의 문제다. 공장을 늘리거나 장비를 들이는 일은 제품 수요가 붙을 때 공급 여력을 만들 수 있다. 반대로 고객 채택과 물량이 계획보다 늦으면 비용을 먼저 부담할 수 있다. 현재 공개된 협약은 투자 방향을 알려주지만, 어떤 제품의 생산량을 얼마나 늘리고 어느 고객 매출로 연결할지는 수치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구미 투자는 확인된 과거 실적이 아니라 제조 경쟁력을 넓히려는 실행 과제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구미는 성장 계획만 있는 장소도 아니다. 2020년 KEC 구미공장에서는 트리클로로실란 유출 사고가 발생했고 작업자 7명이 경상을 입었다고 보도됐다. 밤의 공장과 연기, 통제선이 보이는 현장 사진은 반도체 제조가 깨끗한 제품 렌더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제조시설에는 안전과 환경 관리가 사업 운영의 일부로 따라붙는다.
이미지: 밤의 KEC 구미공장 굴뚝 주변에 연기가 보이고 진입로가 통제된 현장▲ 굴뚝 주변 연기와 통제선이 보이는 2020년 구미공장 화학물질 유출 당시 현장으로, 제조설비 운영에 안전·환경 관리가 동반됨을 보여준다 — 출처: 동아일보, 2020-07-21
사고 보도 하나로 현재의 안전관리 수준을 단정할 수는 없다. 제공된 공개 근거에는 후속 조치나 재발 방지 체계의 현재 상태가 담겨 있지 않다. 그렇다고 과거 사건을 제품 이야기와 무관한 에피소드로 밀어낼 수도 없다. 전력반도체 사업의 가치가 제품 성능과 고객 승인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소재를 조달하고 설비를 안정적으로 돌리며 작업자와 주변 환경의 위험을 관리하는 능력에서도 생기기 때문이다.
구미를 둘러싼 두 장면은 같은 공장의 상반된 현실을 보여준다. 한쪽에는 전력반도체 설비를 늘리겠다는 협약이 있고, 다른 쪽에는 화학물질 사고의 기록이 있다. 증설 계획의 신뢰도는 돈을 집행하는 것뿐 아니라 제조 현장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는 데서 완성된다. 생산량, 비용, 안전은 별개의 홍보 문구가 아니라 한 공장에서 동시에 관리해야 할 변수다.
7.액면병합과 교환사채가 바꾼 주식의 눈금
2026년에는 사업 외에 주식 수와 잠재 유통 물량을 읽는 눈금도 바뀌었다. 5월 20일 보통주 5대1 액면병합이 반영됐다. 액면병합은 여러 주를 더 큰 액면의 한 주로 합치는 절차이므로 그 이전과 이후의 주가나 주당 수치를 그대로 나란히 놓으면 착시가 생길 수 있다. 과거 차트, 주당순이익, 주식 수를 비교할 때 병합 조정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이에 앞선 2월에는 회사가 자기주식 2,947,249주를 주당 746원, 총 21.99억원 규모로 처분해 사모 교환사채의 교환대상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교환사채 투자자는 조건에 따라 채권을 지정된 주식과 바꿀 수 있다. 이 구조는 발행 시점에 새 주식을 즉시 찍어내는 유상증자와는 다르지만, 보유 자기주식이 향후 시장에 나올 가능성을 만든다.
두 사건은 성격이 다르다. 액면병합은 주식의 표시 단위와 수를 바꾸고, 교환사채는 자금조달과 자기주식의 잠재 유통 경로를 만든다. 병합 자체를 기업가치 상승이나 하락으로 해석할 수 없고, 교환대상 자기주식 전부가 당장 매도된다고 가정할 수도 없다. 다만 주가와 주당 지표를 해석하는 사람에게는 둘 다 무시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특히 병합 전 가격인 교환가액을 현재 주가 눈금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 공시 당시의 주식 단위와 이후 병합된 단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자본 사건을 읽을 때는 ‘얼마에 발행했나’만 보는 것보다 어떤 주식 단위를 기준으로 한 숫자인지, 교환 가능성이 실제 유통주식에 어떤 경로로 반영되는지를 구분하는 편이 안전하다.
8.전력반도체 기대가 이익으로 번역되는 조건
한국전자홀딩스를 둘러싼 낙관과 경계는 사실 같은 생산라인을 바라본다. 낙관 쪽은 범용 전력반도체의 가격과 물량이 회복되고, 구미 투자와 자동차용 제품, SiC 및 IPM 같은 제품 후보가 양산과 제품 구성 개선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기대한다. 경계 쪽은 원가와 고정비 부담이 계속되면 설비가 더 바쁘게 돌아가도 적자가 남을 수 있다고 본다. 현재 공개된 실적은 두 이야기 가운데 후자의 가능성을 지워 주지 못했다.
여기서 SiC는 시장 이야기의 조건으로 언급돼 있을 뿐, 제공된 공개 근거만으로 구체적인 제품, 고객, 양산 시점이나 매출을 적을 수 없다. 반면 IPM에는 시제품이라는 확인 가능한 단계가 있다. 구미 투자에도 협약이라는 출발점이 있고, 자동차 전장에는 공동개발과 승인 이력이 있다. 기대를 평가하는 방법은 이 단어들을 한꺼번에 미래 매출로 환산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고객 인증과 양산, 외부매출, 마진 개선으로 이동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미 확인된 핵심 사업은 훨씬 소박하고 구체적이다. 웨이퍼와 리드프레임, 화학물질과 와이어를 조달해 작은 전력반도체 패키지를 만들고, 고객의 전원·구동·보호 회로에 채택돼 출하되는 일이다. 전기차와 서버 전원 같은 최종 시장의 이름은 화려하지만, 돈은 결국 부품 번호별 주문과 생산 원가 사이에서 남는다. 고객 적용처가 넓어져도 판매가격과 제품 구성이 받쳐 주지 않으면 외형과 이익은 갈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이 기업집단의 현재 위치는 제품의 존재 여부보다 번역 능력으로 설명된다. 기술 이력을 양산으로, 높은 설비 활동을 마진으로, 투자 협약을 안정적인 생산능력으로 번역해야 한다. 지주회사인 한국전자홀딩스의 연결 숫자는 그 번역이 성공했는지 가장 늦지만 가장 냉정하게 기록한다. 검은 반도체 패키지는 이미 여러 회로를 향하고 있다. 이제 사업의 무게는 그 작은 부품이 공장을 빠져나갈 때마다 손실이 아니라 이익을 남기는 데 실린다.
각주
- 한국전자홀딩스 사업보고서(2025.12), 한국거래소 KIND, 2026-03-19 — https://kind.krx.co.kr/external/2026/03/19/001133/20260319004746/11011.htm
- 한국전자홀딩스 감사보고서(2025.12), 한국거래소 KRX, 2026-03-12 — https://kind.krx.co.kr/external/2026/03/12/000665/20260312001902/00591.htm
- KEC 회사소개, KEC Corporation, 2026-08-13 열람 — https://www.kec.co.kr/kr/company/overview.asp
- KEC KUS086N10DA 저전압 MOSFET 제품 페이지, KEC Corporation, 2026-08-13 열람 — https://www.keccorp.com/en/product/product_view.asp?idx=1598
- KEC Diodes & Rectifier 제품군, KEC Corporation, 2026-08-13 열람 — https://www.kec.co.kr/kr/product/product_value.asp
- KEC 애플리케이션 개요, KEC Corporation, 2026-08-13 열람 — https://www.kec.co.kr/kr/application/application_gate.asp
- KEC Package Information, KEC Corporation, 2026-08-13 열람 — https://www.keccorp.com/kr/support/packaging.asp
- 한국전자홀딩스 분기보고서(2026년 1분기), 한국거래소 KIND, 2026-05-14 — https://kind.krx.co.kr/external/2026/05/14/000636/20260514001477/11013.htm
- KEC 사업장 소개, KEC Corporation, 날짜 미기재 — https://www.kec.co.kr/kr/company/location.asp
- 한국전자홀딩스 사업보고서 제58기, 한국거래소 KRX, 2026-03-19 — https://kind.krx.co.kr/external/2026/03/19/001133/20260319004746/11011.htm
- 한국전자홀딩스 분기보고서 제59기 1분기, 한국거래소 KRX, 2026-05-14 — https://kind.krx.co.kr/external/2026/05/14/000636/20260514001477/11013.htm
- 한국전자홀딩스 사업보고서(2025.12), 한국거래소 KIND, 2026-03-19 — https://kind.krx.co.kr/external/2026/03/19/001133/20260319004746/11011.htm
- 한국전자홀딩스 분기보고서(2026년 1분기), 한국거래소 KIND, 2026-05-14 — https://kind.krx.co.kr/external/2026/05/14/000636/20260514001477/11013.htm
- 한국전자홀딩스 감사보고서(2025.12), 한국거래소 KRX, 2026-03-12 — https://kind.krx.co.kr/external/2026/03/12/000665/20260312001902/00591.htm
- KEC-LG화학 전기차 BMS 다이오드 모듈 공동개발, KEC Corporation, 2017-07-04 — https://www.kec.co.kr/kr/company/news_view.asp?idx=112
- KEC 회사연혁, KEC Corporation, 날짜 미기재 — https://www.kec.co.kr/kr/company/history.asp
- 구미시, 경북도·KEC와 전력반도체 투자 업무협약 체결, 연합뉴스, 2024-03-05 — https://www.yna.co.kr/view/AKR20240305099400053
- KEC 구미공장 유해화학물질 유출 사고, 동아일보, 2020-07-21 —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00721/102080056/1
- 한국전자홀딩스 변경상장(액면병합), 한국거래소 KRX, 2026-05-15 — https://kind.krx.co.kr/external/2026/05/15/001364/20260515002967/68155.htm
- 한국전자홀딩스 자기주식 처분 결정 및 사모 교환사채 발행, 한국거래소 KIND, 2026-02-05 — https://kind.krx.co.kr/external/2026/02/05/000982/20260205002563/11333.htm
- KEC Diodes & Rectifier 제품군, KEC Corporation, 2026-08-13 열람 — https://www.kec.co.kr/kr/product/product_value.asp
